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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조선후기 화가들 1 (단원 김홍도, 겸재정선)

by 여니여니요니 2021. 2. 14.

조선 후기 화가들 1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오래전부터 자연은 동양인들에게 소중하고 절대적이었던 자연이었습니다. 그런 경외심을 담아낸 그림이 바로 산수화입니다. 자연을 중시했던 조선과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그려져 온 그림입니다. 험한 바위와 환상적은 폭포수가 그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꿈의 곳을 표현했다는 평입니다. 예술적 안목이 뛰어났던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이걸 안견에서 그리도록 하게 한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주로 조선의 문인들, 사대부가 추 군했던 이상향을 중국에서 얻었고 '몽유도원도', '무이구곡도', '소상팔경도' 같은 류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만큼 조선의 문인이나 상류층들이 삶의 이상이나 산수의 이상을 중국에서 찾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의 풍은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서 달라지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2번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입니다. 이 전쟁은 조선의 삶을 뒤바꿔 놓는데 그중에서 미술도 예외는 아녔습니다. 새로움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들은 당시 조선의 현실을 담으려 했고, 그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배제시키고 조선의 것을 그리는 것으로 방향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적인 노래, 미술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쟁 이후 찾아온 사회를 토대로 영정조 시대가 되면서 문예 부흥기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때 회화도 중요한 우리만의 독창적인 그림이 탄생하였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탈피하고 우리의 느낌을 살린 진경산수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서민들의 현실을 그려낸 풍속화가 그것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시대를 풍미한 천재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혜원 신육복과 겸재 정선 등이 천재화가였습니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 인근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며 한양 곳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비 온 뒤 갠 인왕산의 모습을 강렬한 붓터치로 거침없이 그린 그림이 바로 '인왕제색도'입니다. 겸재의 평생 죽마고우였던 사천 이병연이 있는데 이병연의 시가 없으면 정선의 그림도 무색해지고 정선의 그림이 없으면 이병연의 시가 빛을 잃었다 할 정도로 둘은 서로 시와 그림으로 마음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런 유년의 친구가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어 친구의 쾌유를 빌며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수화 속에 독특한 구도가 있는데 주관적인 다시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인왕제색도뿐만 아니라 금강산은 실제 눈으로 본 풍경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동경로에 따라 여행하듯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정선이 추구한 진경산수화는 실제 우리나라의 산천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림에 담아냈지만 창작자 개인의 주관성을 더욱 부각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은 여든이 넘은 나이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당대의 칭송을 받은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이러한 겸재의 영향을 받으면서 완전히 색다른 그림을 그려낸 또 다른 천재화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단원 김홍도입니다.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조선시대 일상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해 놓은 단원풍속도첩입니다. 

 그중에 씨름도는  밀릴 듯 밀리지 않은 긴박한 순간 중앙에서 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구나 봤을 것이다. 씨름도의 구도가 마방진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방진이란,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이자 학자였던 최석정이 지은 수학책에 그 답이 나와있는데 구수략에 의하면, 가로세로 세 칸씩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1부터 9까지 수를 격치지 않게 채워 넣은 뒤, 가로 세로 대각선의 수의 모두 같아지는 것을 마방진이라고 합니다. 최석정의 수학책엔 아주 다양한 마방진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마방진이 있는데 9개의 육각형이 거북등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양의 오일러보다 61년 앞서 발표되었으며 이는 세계가 공인하였습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벽' 선비가 세속을 유람하면서 보는 풍경을 담은 풍속화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여덟 폭 병풍이 있습니다. 이 풍속화첩이 그려지기 4년 전에 행려풍속도가 있는데 이 그림 속에는 내용을 설명해주는 익살스러운 글이 있는데 바로 단원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의 글이 있습니다. 표암 강세황은 시, 서, 화에 능한 조선시대 문인화가이자 미술평론가였습니다. 김홍도의 재능일 일찍이 알아본 강세황은 사제지간을 뛰어넘어 예술적 동지로 그를 아꼈습니다. 김홍도가 그리지 못하는 그림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모근 그림에 있어 실력이 좋았는데 강세황의 추천을 받아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궁 후 정조에 눈에 띄게 되는데 정조가 감홍도를 아껴 모든 도화서의 일을 주관하게 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위해 화려한 회갑연을 치르는데 8일간 펼쳐진 정조의 능행차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원 김홍도에게 그리게 하였고 이것이 바로 유명한 '원행을묘정리 의궤'입니다. 김홍도의 풍으로 그려진 의궤은 기록유산에 꽃으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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