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10003쪽의 분량의 메모. 수첩의 내용은 세상의 모든 것을 적어 놓은 듯하며 이건 한 사람이 썼다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전문적입니다. 이 수첩은 인류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첩입니다.
건축가이며 조각가였던 다빈치는 인체에 해박하였습니다. 수많은 인체를 표현하며 회화, 건축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였고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재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수태고지,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이 있었습니다. 1452년 피렌체 공화국 토스카나의 빈치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다 빈치는 빈치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이고 실제 본명은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르 다 빈치'로 세르 피레로의 아들 레오나르도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님은 농부였습니다. 사생아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신분상의 활동제약도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산적이지 못한 인물로써, 너무 완벽성을 추구했던 탓에 그리던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곤 했고 시작한 그림들을 끝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작품이 20작 정도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이기보다는 발명가 이자 과학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수사본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림보다는 화법에 대해 더 많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물에 관한 물리인 수리학과 지질학 새의 비행에 대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이 쓰여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엄격한 과학적 성향은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빈치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머릿속을 스쳐갔던 단편들을 메모에 적어놓았습니다. 개인적인 상념에서 예술, 철학, 공학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다빈치 노트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왜 메모에 집착하였을까요? " 그저 조용히 살다 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에 이름을 떨 치치 못한 자는 바람에 실려 가는 연기와 같다. 그래서 난 나의 모든 기억을 다른 이들에게 남기고 떠나려고 한다." 다빈치는 마치 미래를 내다본 것 같았습니다.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었던 발명품을 구원하였습니다. 다빈치는 생애를 통틀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바로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가 날수 있다면 인간도 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의 대한 욕망은 노트에 많이 나오는데요. 앞서 글의 내용대로 다빈치는 사생아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는데 그런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건 1466년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방에 보내지면서부터였습니다. 다빈치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다빈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땅을 가진 중산층이었고 삼촌은 방앗간을 운영하였습니다. 다빈치의 아버지가 어느 날 피렌체에서 다빈치의 습작품을 보게 되는데 그 작품을 보고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친구 베로키오에게 습작품을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보니 베로키오가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베로티오의 공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수석 제자였던 보티첼리와 만나서 굉장히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빈치에게 피렌체는 기회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였던 이 곳에서 건축학, 기계공학 등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15세기부터 현대의 비행기를 상상했던 다빈치는 실제 비행에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지나치게 혁신적인 장치라 당시 기술력으로 구현이 불가능했거나 다빈치의 실험정신이 부족했을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의 오랜 염원은 400년 후에 라이트 형제에 의해 성공하게 됩니다.
1482년 서른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활동영역을 옮겼습니다. 그 당시 번성기를 맡고 있던 밀라노에서 그는 밀라노의 군주인 루도 비토 스포르차에게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자신이 무한한 엔지니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포르차는 군사적으로 막강하였고 돈도 많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무기를 많이 발명하였는데요. 제자들과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살인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보르자 등의 후원을 받아가면서 군사 공학자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다빈치는 천재적이긴 하지만 산만하여 거의 다 미완성인 작품들이었고 완성된 작품의 수도 적습니다. 노트에 써있는 산물들도 결과적으로 나온 산물은 없습니다. 미완성과 스케치로만 머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했던 다빈치도 완벽하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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