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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바로크미술과 로코코미술

by 여니여니요니 2021. 2. 17.

바로크미술과 로코코미술

1) 바로크 미술

르네상스의 미술이 완벽하였고 3명의 천재화가가 나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가들은 천재화가로 인해 힘들어졌고 르네상스 말에는 매너리즘 미술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매너리즘에 빠지다 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된 말입니다. 매너리즘 미술이란 르네상스와 바 로트 사이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르네상스 말에는 자연 대신 천재화가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였지만 원조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이 바로크 미술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정하고 우아한 보전 양식에 비해 역동적이고 남성적이며 지나치게 과장된 미술 양식의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회화에서 명암대비와 풍부한 색체의 사용으로 긴장감 구도 , 격정적인 화면 구성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여 화면 밖으로 잘려나간 인물을 표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루벤스, 푸생, 카라바조, 페르메이르 등이 있습니다.  바로크 미술은 극적인 명암대비가 특징인데 밝은 곳은 엄청 밝고 어두운 곳은 많이 어둡게 해 극적인 명암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극적인 요소를 부각하고 화면에 긴장감을 주는 구성으로 실제감과 현실감을 부여하였습니다. 특히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을 보면 중심축에서 벗어나 주변 공간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연극적인 공간 활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표현하여 격정적인 감정과 긴장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로코코 미술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이집트 파라오 이후, 가장 강력한 왕권을 누렸던 왕으로써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고 그곳에서 권력과 사치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1715년 9월 1일 우리 14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곁에서 숨죽이며 살 던 귀족들에게는 이제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신이 난 귀족들은 베르사유를 떠났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집을 가지게 되면서 그곳을 꾸민 미술품들이 필요햤ㄴㄴ데 이것을 로코코 미술이라고 합니다. 

로코코는 귀족 중심의 미술로 뜻은 조개껍데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조개껍데기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물을 많이 만들었는데 귀족중심의 미술이라 서민들이 비약해 부른 말이 로코코입니다.

서양미술사의 흐름은 대부분 유럽에서 시작합니다. 17세가 유럽 중심의 미술이며 특히나 바로크는 왕족 중심이 잘 발달된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서 부흥했으며 왕실 중심의 미술이기 때문에 왕족 위주의 그림을 해당 궁전 전속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귀족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감각적인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을 최조 발명한 시기이며 보존력이 높아 지금 와서도 쓰는 물감입니다. 이 시대에는 명암법을 발달하였습니다. 또한 와토는 풍부한 색채로 사치화 화려한 귀족의 야외 연회 장면을 표현하였고 남녀 간의 사랑을 재미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장식성이 강한 미술로써 밝고 섬세하고 경쾌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즐겁고 우아한 것이 특징입니다.

로코코는 귀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미술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 서민들 입장에선 얼마나 보기 싫은 문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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